
신동식 한국해사기술(KOMAC) 회장은 영국 로이드선급협회, 미국선급협회 최초의 한국인 검사관, 대통령 초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활동했다.
선정위원회는 그가 2,000여종 이상의 선박 설계· 감리, 신개념 저탄소 고효율 선박 설계 등 조선산업을 국가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올해 94세인 그는 현재도 KOMAC 회장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선박설계 기술이 없던 시절 조선해양산업의 기틀을 다져 오늘날 세계 1위의 조선산업과 세계 4위의 해상수송력을 갖춘 대한민국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한 주역으로 꼽힌다.
서울대 조선항공학과(현 조선해양공학과)에 입학한 신 회장은 전 세계 조선소에 100통이 넘는 편지를 썼고, 1956년 스웨덴 코쿰스 조선소의 연락을 받고 열흘 동안 비행기를 타고 갔다.
오전 6시에 일어나 공부하고 8시부터 하루종일 현장 실습을 하는 강행군 끝에 당시 20대 초반의 신동식은 스웨덴 대학에서 7년 과정으로 따는 책임자급 검사관 라이센스를 3년 만에 딴 뒤 한국인 최초로 로이드선급협회의 국제 검사관을 지내게 된다.
영국에서 나름 잘 나가던 그는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대장’의 요청으로 귀국해 33세라는 최연소 나이로 초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정부 조직은 해무청이 해체돼 조선은 상공부, 해운은 교통부, 항만은 건설부로 흩어져 있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건설하고 해사산업을 일구기 위해서는 수산까지 포함한 해사관련 행정을 일원화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대통령직속 해사위원회를 만들고, 위원장으로서 조선소 건설 등을 지휘했다.
민간으로 돌아온 뒤에는 KOMAC에서 쇄빙선 아라온호, 과학탐사선 온누리호, 핵폐기물 운반선 등 2000여 종류의 배를 설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