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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항만/물류

[해운거목] ①김용주-대한민국 해운산업의 이정표를 세우다

  • 등록 2026.01.08 15:55:28

 

 

 

해운거목 선정위원회는 김용주에 대해 1949년 우리나라 해운업계를 대표하는 국영기업체인 대한해운공사 출범시 초대 사장을 역임하면서 한국해운산업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했다.

 

김용주는 1949년 자신 소유의 조선우선을 출연하고 정부의 출자를 받아 사실상 자신의 힘으로 대한해운공사를 설립했다.

 

대한해운공사는 1950년 6.25 전쟁으로 부산으로 이전했으며 1951년 한-일 간 최초로 국제정기항로를 열었다. 1952년 국내 기업으로서 최초로 사보 <해공>을 창간했다.

 

대한해운공사는 1958년 해운공사법 폐지에 따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1962년 미 태평양 항로를 개설해 처음 해외항로에 발을 들였다. 이후 민영화와 대한선주로의 사명 변경 등을 거치며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초대 사장에 취임한 김용주는 첫 목표를 홍콩 정기항로 개설에 둔다. 8·15 해방 이후 마카오와 홍콩은 한국 대외무역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역을 뒷받침할 만한 선박은 몇 척 되지 않았고 그나마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노후선들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해기원들의 능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홍콩 정기항로를 개설하기엔 난관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김용주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몸으로 부딪쳐 목표를 관철시킨다. 그는 자신이 홍콩으로 날아가 현지에서 1개월에 걸쳐 홍콩정청과 설전을 벌이고 대리점 설치, 항로개설에 관한 기본협정체결 교섭, 화물조사 등을 거쳤다.

 

1949년 1월, 제1선으로 5,000톤급 금천호를 취항시키면서 마침내 홍콩정기항로 개설을 실현시켰다. 월 1회 왕복 정기운항이 이뤄지면서 우리나라의 대 홍콩 무역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됐다.

 

김용주는 사후에도 한국 해운과 깊은 관계를 유지한다.

 

그는 4남 1녀를 뒀는데 맏딸 김문희에게서 태어난 외손녀 현정은은 HMM의 전신인 현대상선을 경영하게 된다.

 

그리고 막내아들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해운업계의 오랜 과제였던 한국해양대와 목포해양대 승선인원 증원을 성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