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운업계에 널리 알려진 "포성이 울리면 배를 사라"는 격언이 이번에도 적중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교전을 벌이면서 유조선 선주들이 중동 위험지역을 피하고 동시에 VLCC 운임은 급등세를 연출했다.
지정학적 위험은 수요를 감소시키기 전에 공급을 먼저 줄인다. 양국 교전으로 중동의 유조선 운항이 급감하면서 13일 VLCC 스팟운임은 하루만에 20% 뛰었다. 선박중개업체 센토사(Sentosa Ship Brokers)에 따르면 이날 중동에서 일본으로 가는 VLCC 운임이 1만 2,000달러 뛰어 하루 3만 1,000달러를 기록했다.
클락슨증권은 과거 중동에서의 지정학적 충돌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이번 이스라엘-이란 교전에 대해서도 동일한 결론을 도출했다.
클락슨증권의 프로드 모르케달을 비롯한 애널리스트들은 "해운시장은 지정학적 긴장에 따른 운영상의 비효율성과 위험 프리미엄에서 오히려 이득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이같은 패턴은 이전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가령, 1979년 '이란 혁명'과 1990년과 2003년에 시작된 걸프전쟁 때가 그랬다.
1979년과 1980년에 일어난 이란에서의 유혈폭동과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전 세계에서 하루 수백만 배럴의 원유 운송이 줄어들었다. 당시 페르시아만은 전쟁 위험에 대한 추가 운임과 항만에서의 체선으로 이용가능 톤수가 대거 흡수됐다.
1990~1991년의 1차 걸프전 당시에도 양상은 비슷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하루 약 400만 배럴의 원유 공급이 줄어들었고, 유가는 2배로 뛰었다. 클락슨증권은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인프라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나 호르무즈 해협 폐쇄 등 추가적인 긴장 고조를 우려한 정유업체와 무역회사들이 재고를 늘리기 위해 화물을 추가 매수했다"고 전했다.
저장 터미널이 빠르게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초과 물량이 계류 중이던 VLCC로 몰렸고, 이는 단기 유조선 '반짝 호황'을 가져왔다.
가스운반선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클락슨증권에 따르면 16일 VLGC 운임은 친환경 선박과 전통연료 선박 모두 6%씩 올라 각각 하루 5만 7,600달러, 5만 4,600달러를 나타냈다.
아반스가스(Avance Gas)의 CEO 오이슈타인 칼레클레프는 "긴장고조로 이란의 LPG를 중국으로 운송하는 데 사용되는 57척의 초대형 LPG운반선 운송이 차질을 빚게 되면 운임이 상승할 것이고, 이는 다른 선주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반스가스에 따르면 이란산 LPG를 운송하는 VLGC는 2020년 10척에서 2024년 57척으로 급증했으며, 현재 전 세계 VLGC 선대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폴리마켓(Polymarket) 데이터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올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확률을 33%로 보고 있다.
클락슨 애널리스트들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이는 심각한 경제적·군사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란이 석유수출을 지향하고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는 한 전면 봉쇄는 최후의 선택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선박중개업체 깁슨(Gibson Shipbrokers)은 대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해상운송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여기에는 제한적인 공격, 선박 피납, 위협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깁슨은 이 경우에도 "호르무즈 해협을 운항할 뜻이 있는 선주들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해 호르무즈를 지나는 선박의 운임은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