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규는 1948년 대한해운 공사를 시작으로 풍국해운, 고려해운, KCTC 설립 등 한국 해운산업의 현대화를 이끈 1세대 개척자다.
선정위원회는 그의 공적으로 기업인으로서의 역할보다는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운영, 한국해법회 창립, 한국해운학회 창립 기여, 묵암재단 설립 등 해양분야 학술진흥과 사회봉사에 헌신한 점을 우선 꼽았다.
박현규는 1946년 진해고등상선학교(현 한국해양대) 항해학과에 들어가 해양대 1기 졸업생이 됐다. 1950년 1월 대한해운공사 소속 옹진호 일등 항해사로 근무할 때 한국전쟁을 맞았고, 1954년 대한해운공사 초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이어 1956년 등록번호 23번으로 갑종 선장 면허를 받았다.
일반에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는 한국선급(KR) 설립에 기여한 바가 크다.
1950년대만 해도 한국 선박은 세계 최대인 로이드선급협회 등 외국 선급협회에 등록을 해야 했다. 국내엔 선박 등급을 정하고 선박 구조·설비를 검사하는 선급협회가 없어 애로를 겪을 때 대한해운공사 해무조사역으로 근무하던 그는 1960년 5월 해무청에 선급협회 설립을 제안하면서 KR 설립의 길을 텄다.
해양대 1기생인 허동식이 한국선급협회를 설립할 당시 박현규도 18명의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기업인으로서 그는 1964년 풍국해운을 창업, 1966년 8월 2,597톤급 보리수호를 인수했고, 신태범(현 KCTC 회장)이 상무로 있던 고려해운과 합쳤다. 고려해운 전무로 있던 1972년 고려콘테이너터미날(현 KCTC)을 창업했다.
1978년 8월 '한국해법회'(현 한국해법학회) 창립 부회장, 1980년 5월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창단 발기인 및 부회장, 1982년 한국해운학회 창립 부회장, 1985년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을 겸임했다.
상복도 많아 1988년 제1호 ‘해운의 탑’, 2010년 한국선주협회 창립 50주년 기념 첫 공로패를 각각 받은 데 이어 2020년에는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가업을 대물림 했으며, 장남인 박정석은 현재 한국해운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